[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30) 졸속행정이 부른 1990년 지하철..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30) 졸속행정이 부른 1990년 지하철공채 파동

최종수정 : 2017-09-12 15:20:05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30) 졸속행정이 부른 1990년 지하철공채 파동

▲ 서울 도심에 건설 중인 지하철 공사 현장 /국가기록원

지난 1990년 9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시 자동차관리사업소에는 오후부터 자동차 판매대리점 직원들과 등록대행업자들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됐다. 평소 접수되는 자동차 등록건수가 700여 건 수준이던 관리사업소에 이날 접수된 건수는 2000여 건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원래 접수 마감이던 오후 6시를 넘긴 것은 물론이고 다음날인 20일 새벽 2시까지 접수창구는 북새통을 이뤘다.

이는 정부가 기습적으로 지하철공채 매입률(차량 가격 대비 공채 매입 비율)을 대폭 올렸기 때문에 벌어진 소동이었다. 자동차 등록 시에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지하철공채 매입률이 20일부터 기습적으로 대폭 상향돼 시행되자,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차주들이 판매대리점 직원들과 등록대행업자들을 동원한 것이다.

당시 교통부는 석달 전인 6월 1일 '지하철도 건설 및 운영에 관한 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입법예고하면서, 지하철공채 인상시기를 1991년 1월 1일부터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8월 23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시행시기를 공포한 날로 바꾸고는 9월 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20일자로 시행령을 전격 공포해 버린 것이다. 무려 100일이나 앞당긴데다 시행시기마저 임의의 공포날짜로 정해버렸으니 말 그대로 기습인상이었다. 심지어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시조차도 시행 하루전인 19일에 통보를 받았을 정도다.

이러니 자동차관리사업소에 항의가 빗발치는 것은 당연. 뒤늦게 인상소식을 알게 돼 인상된 매입률로 자동차를 등록해야 하는 시민의 항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상황이었지만, 교통부 관계자는 언론에 "입법예고 기간을 거쳤으므로 홍보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지하철투자재원 마련에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당시 인상된 지하철공채 매입액을 보면 1천cc 미만은 종전 4% 그대로, 1000~1500cc은 종전 6%에서 9%로, 1500~2000cc는 8%에서 20%로, 중고차는 4%에서 8%로, 외제차는 배기량에 따라 3~5배씩 더 비싸졌다. 이에 따라 당시 현대의 엑셀, 대우의 르망, 기아의 프라이드 등 소형승용차는 15~18만원의 추가부담이, 현대의 그랜저·쏘나타와 대우의 르망 2000cc, 기아의 콩코드 캐피탈 등 중형자가용차량은 등록시 38만~45만원을 더 부담하게 됐다.

1990년 지하철공채 파동은 자동차관리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8월 경제장관회의에서 인상 시기를 공포날짜로 변경한 것이 알려지자 전국자동차영업소에서는 자동차를 하루라도 빨리 출고받으려는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이 빚어졌다.

각 자동차 메이커 영업소에서 조기출고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게 되자, 고객들은 지하철공채 매입률이 인상된 후 출고될 경우 인상분만큼은 영업소에서 부담해 줄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계약을 취소하거나 매입차종을 변경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당시는 자동차영업소에서 고객서비스의 일환으로 책임보험가입 및 등록대행업무를 해주는 것이 보편화돼 있었고 일부 자동차영업소에서는 지하철공채 할인구입까지 대행해 주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공채 파문으로 인해 자동차영업사원들은 팔고도 오히려 손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하철공채는 원래 지하철 건설로 막대한 부채가 발생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해 1978년 처음 나왔다. 당초 관련법에서는 지하철 건설때에만 공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돼 있었으나 서울 지하철이 빚더미에서 헤어나질 못하자 1985년 법을 고쳐 지하철부채를 모두 상환하고 흑자운영이 될때까지 무기한 발행, 강제소화시키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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